몇 년 전, 저는 전남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주말 텃밭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도시 속에서 자연을 체험할 기회가 흔치 않은 요즘, 이 경험은 저와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이, 고추, 가지, 쑥갓 등 다양한 채소를 함께 키우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물을 주러 갔던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단순한 채소 재배를 넘어, 텃밭은 우리가 도시 속에서도 자연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죠. 이 글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배우는 시간, 채소를 직접 키우며 생태 감수성을 기른 경험, 가족 공동체가 회복되는 계기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텃밭 만들기의 진정한 가치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배우는 주말 – 도시에서 만난 초록빛 교실
바쁜 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아스팔트 길과 실내 공간에서 성장하고, 흙을 직접 만져보는 경험조차 드뭅니다. 하지만 텃밭 체험은 도시 속에서 자연을 직접 보고, 만지고,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전남대 텃밭 체험에 참여했을 당시,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물뿌리개를 들고 스스로 물을 주고, 흙에 손을 묻히며 웃고, 어린잎이 자라나는 것을 관찰하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땅속에 씨앗이 뿌려지고, 시간이 지나 줄기와 잎이 나며, 결국 우리가 먹는 식탁 위의 음식으로 이어진다는 ‘생명의 순환’을 몸으로 배워나갔습니다. 교과서로는 가르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자연스럽게 심어지는 과정이었죠.
특히 아이들에게 직접 키운 채소를 수확해서 먹어보게 했을 때, 평소 먹지 않던 채소도 "내가 키운 거야!"라며 뿌듯하게 먹는 모습은 잊지 못할 장면이었습니다. 텃밭은 아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감동을 알려주는 최고의 생태 교실이었습니다.
2. 오이·고추·가지·쑥갓을 키우며 생태 감수성을 키우다 – 흙과 땀에서 배운 생명의 가치
텃밭에서 키운 채소는 마트에서 사온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단순히 ‘무농약이라 건강하다’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키워낸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줍니다. 흙을 만지고, 벌레를 보고, 잎이 마르면 걱정하고, 열매가 맺히면 기뻐하고. 이러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생태 감수성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됩니다.
저희 가족은 오이, 고추, 가지, 쑥갓 등을 심었습니다. 각각의 채소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 물의 양과 햇빛, 토양의 차이로 성장에 영향을 받는 것을 관찰하며 ‘생명은 다 다르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오이는 덩굴을 타고 자라니 지지대를 세워야 하고, 고추는 꽃이 피고 떨어진 뒤 열매가 생기는 구조여서 꽃잎 하나에도 애정을 갖게 됩니다. 가지는 햇볕을 좋아하고, 쑥갓은 어느 정도 자라면 꽃이 피면서 잎이 억세지 죠. 이런 세심한 차이를 돌보며, 우리는 자연과의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느림'입니다. 씨앗을 뿌리고 열매가 자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도, 저도 기다림과 인내를 배웠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텃밭은 ‘기다림이 가치 있는 일’임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선생님이었습니다.
3. 가족 공동체의 회복 – 주말 텃밭이 만들어준 따뜻한 연결
텃밭 체험은 단순히 채소를 기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가족 간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주말마다 텃밭을 찾으며 우리는 함께 이동하고, 대화하고, 함께 흙을 만지며 웃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전엔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던 시간이, 이제는 흙과 햇살 아래에서 하나로 연결된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 주기를 두고 다투기도 했고, 지렁이를 보고 놀라 도망가던 아이가 어느 순간 "지렁이는 흙을 건강하게 해주는 친구야"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텃밭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수확이라도 함께 나누며 저녁 식탁에 올리면, 그 하루는 특별한 하루가 됩니다. "이 고추는 네가 딴 거야", "쑥갓이 잘 자랐네", "이 오이는 진짜 맛있다!" 이런 대화가 가족 간의 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텃밭 체험 이후, 저희 가족은 계절마다 마당 화단에 작은 텃밭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도시 속 작은 텃밭이 만들어낸 큰 변화
도시는 점점 더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만을 중시하는 도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잊고 살죠. 흙의 냄새, 식물이 자라는 속도,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생명의 경이로움.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텃밭은 다시 일깨워줍니다. 도시 한가운데서 만난 작은 초록 공간이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을 배웠고, 저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으며,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도시 속 작은 생태계, 텃밭. 그것은 더 이상 사치나 취미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올해도 다시 흙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씨앗 하나에서 시작된 그 모든 변화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당신도 도시 한켠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보세요. 그곳에서 자라는 것은 채소뿐만이 아닙니다. 사랑, 존중, 기다림, 그리고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