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이제는 과학적 사실을 넘어 전 세계 정치, 경제,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핵심 어젠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각국은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다양한 기후정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마다 경제 구조, 에너지 자원, 산업 의존도, 정치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기후정책의 방향성과 실행 전략에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주요 국가와 지역(유럽연합,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의 기후정책 트렌드를 비교하며,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흐름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유럽연합: 선도적 규제와 탄소경제 전환의 중심
유럽연합(EU)은 전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선도적인 기후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2019년 발표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은 2050년까지 EU 전체의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며,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고려한 대규모 전환 전략입니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건물 에너지 효율화, 순환경제, 지속가능한 농업 등 다양한 부문에 걸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정책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입니다. 이는 EU 외부에서 수입되는 철강, 시멘트, 비료 등의 제품에 대해 탄소 함유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EU는 기후금융 및 사회적 공정 전환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공정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통해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지역과 산업에 대한 지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EU는 규제 중심의 강력한 기후정책을 통해 글로벌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기술 기반 전환과 기후리더십 복원 시도
미국은 세계 2위의 탄소 배출국이자, 전통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해 온 국가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정책의 방향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은 다시 한번 글로벌 기후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했습니다.
2022년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후·에너지 투자 패키지로, 총 3,70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이 전기차, 재생에너지, 탄소포집, 청정기술 분야에 투입됩니다. IRA는 기존의 규제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중심으로 민간 기업과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미국은 ‘기후 리질리언스(Climate Resilience)’ 개념을 강조하며, 기후재난에 대한 대응력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토안보부, FEMA, 국방부 등 다양한 연방기관이 기후변화 리스크 분석과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기후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다만,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정책 차이, 정치적 갈등 등은 여전히 미국의 기후정책 일관성에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선도적인 주도 있는 반면, 일부 주는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주요국: 점진적 전환과 국제 압력 사이의 균형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으로, 2060년까지의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고 있지만, 여전히 석탄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태양광, 풍력, 전기차, 배터리 등 저탄소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녹색 기술 리더십’을 빠르게 구축 중입니다. ‘에너지 구조 전환’과 ‘국가 에너지안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것이 중국의 기조입니다.
일본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소 에너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 에너지 믹스 구성에 있어서 여전히 고민이 많습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46% 감축(2013년 대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탄소세, 탄소시장 도입도 점진적으로 추진 중입니다.
대한민국은 2050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2018년 대비)을 목표로 하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차 보급, 스마트 그린도시 조성 등의 정책이 전개 중이며, 최근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민관 협업 거버넌스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 산업 구조의 에너지 집약성, 전력요금 현실화 문제 등으로 인해 정책 실효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특히 EU의 CBAM 등 해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수출 경쟁력 확보와 기업 전환 전략이 중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공통 트렌드와 앞으로의 과제
전 세계 기후정책을 비교해 보면 각국은 서로 다른 경로를 걷고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탄소중립 목표 수립: 대부분의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이 2050년 또는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 기후금융 확대: 공공·민간 투자 자본이 친환경 산업으로 이동 중이며, ESG 기준이 세계 자본시장에 통합되고 있습니다.
- 기후적응 전략 강화: 이상기후와 재해 증가로 인해, 적응 능력(resilience)을 키우기 위한 정책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 파리협정, COP 회의, CBAM 등 국제 기후 거버넌스 체계에 맞춘 국내 정책 정비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 간 책임 분담, 기술 격차,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논란 등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개도국의 감축 비용 지원과 기술 이전은 글로벌 협력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결국 기후정책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산업, 외교, 복지까지 포괄하는 국가 전략입니다. 각국의 기후정책 트렌드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다양한 해법 속에서도 협력이 필수'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 앞에서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목적지는 하나입니다. 지속 가능한 지구, 그것이 바로 모든 정책이 향해야 할 방향입니다.